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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ipture · church history · grace — daily

오늘의 말씀 1/3

여호수아 19:12

오늘의 깨달음 · 하나님의 인도하심

사릿에서부터 동쪽으로 돌아 해 뜨는 쪽을 향하여 기슬롯 다볼의 경계에 이르고 다브랏으로 나가서 야비아로 올라가고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각 지파에게 주신 땅의 경계를 세밀하게 묘사하며, 하나님의 정확하고 질서 있는 계획을 보여줍니다.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도 하나님의 섬세한 인도하심과 공급하심이 있음을 신뢰해야 합니다.

오늘의 선교사 1/3소개 2026. 7. 28.

스탠리 로더Stanley Rother

1935–1981 · 과테말라

스탠리 로더는 1935년 미국 오클라호마의 오카체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신학교에서 학업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끈질긴 노력 끝에 1963년 가톨릭 사제로 서품되었습니다. 서품 후 오클라호마 교구에서 사목 활동을 하던 그는 1968년 과테말라 선교를 자원하여 산티아고 아티틀란 지역의 츠투힐(Tz'utujil) 원주민 공동체로 파송되었습니다. 로더 신부는 츠투힐어를 배우고, 이전에 글자로 기록되지 않았던 이 언어로 신약성경을 번역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또한 지역 주민들을 위해 학교, 병원('호스피탈리토'), 그리고 이 지역 최초의 가톨릭 라디오 방송국을 설립하는 등 다방면으로 봉사하며 공동체 발전에 헌신했습니다. 주민들은 그를 '파드레 아플라스(Padre Apla's)', 즉 '프란치스코 신부'라고 부르며 깊은 애정을 표현했습니다. 1970년대 후반 과테말라 내전이 격화되면서 원주민과 교회 지도자들에 대한 탄압이 심해졌고, 로더 신부의 이름도 살생부에 오르게 됩니다. 1981년 잠시 오클라호마로 피신했으나, 그는 곧 자신이 돌보던 양떼를 버릴 수 없다며 과테말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1981년 7월 28일 새벽, 46세의 나이로 사제관에서 무장 괴한들에게 살해당하며 순교했습니다. 그의 시신은 오클라호마로 돌아와 안장되었지만, 츠투힐 주민들의 요청에 따라 그의 심장은 산티아고 아티틀란 성당 제단 아래에 묻혔습니다. 그는 2017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미국 태생 가톨릭 사제로는 최초로 순교자로 시복되었습니다.

For my benefit I am a Christian, for the benefit of others I am a priest.

나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는 그리스도인이지만,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서는 사제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격언, 스탠리 로더 신부의 좌우명
기독교 역사 1/5

얀 후스 순교

1415년 7월 6일

15세기 보헤미아의 종교개혁가 얀 후스는 존 위클리프의 영향을 받아 성경의 권위를 강조하고 교황청의 부패와 면죄부 판매를 비판했습니다. 그는 콘스탄츠 공의회에 소환되어 안전 통행을 약속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단으로 정죄받았습니다. 결국 1415년 7월 6일 화형에 처해져 순교했습니다. 얀 후스의 순교는 100년 후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거위(Hus)를 불태웠지만 백조(Luther)가 나타날 것'이라는 그의 예언처럼 개혁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후스의 삶을 통해 진리를 위한 용기 있는 신앙과 교회의 본질 회복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을 받아야 합니다. 성경적 가치 위에 서서 세상의 부패에 맞서고, 교회의 순수성을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함을 일깨웁니다.